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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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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 찬솔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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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구조 속에서 내가 획득한 강자•권력자로서의 위치를 써 보자.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운 좋게 획득한 것이다.

- 비장애인으로 태어났다. 현재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
- 서울에 산다.
- 대학을 나왔다.
- 시스젠더다. 시스젠더로 태어난 것에 만족한다. 성별 전환을 원한 적이 없다.
- 비인간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다.
- 당장 내게 먹을 것과 잘 곳과 입을 것이 있다.
- 내가 사는 국가에 전쟁이 나서 다른 국가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아니다.
- 언어, 인터넷, 스마트 기기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약자의 위치 또한 대부분 생득적으로 갖고 태어났다.

- 여성이다.
- 바이섹슈얼이다.
-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대학 졸업 때까지 기초생활수급권자였다. 현재도 뭐.. 아등바등 살고 있다.
- 노동자다. 사용자로 산 적 없다. 앞으로 사용자로 살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 지방대 출신이다.

이쯤 되는 것 같다. 뭐 때매 이것들을 나열하는지 페친들 대부분이 아실 듯하다.

시스젠더로 태어나 성별 전환을 원한 적 없는 나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며 갖가지 모양의 폭력과 차별을 경험한 나는, 한 사람이지만 다르다. 나라는 한 사람은 복잡하게 계급화되고 위계화된 사회 구조 안에서 다양하게 호명되고 다양하게 위치한다. 이 사회 구조 안에서 때로는 강자가 되고 때로는 약자가 된다. 운 좋게 시스젠더로 태어난 덕에 성별 전환을 위한 고민하기, 막대한 수술비 모으기, 수술 후 배제에 시달리기, 가족 포함 지인으로부터 관계 단절되기 등 고생스러운 길을 피해갈 수 있었다. 반면 운 나쁘게 여성으로 태어나 취직 시장에서 차별당하고, 회사에서 성희롱당하고, 데이트폭력을 겪고, ‘불법’이라 규정된 방법으로 임신중단을 해야 했다.

내가 이해하는 인권 관련 모든 운동은 이 ‘운’에 의해 인간의 권리와 존재가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집안에 태어나 어떤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이 존재가 제도권 안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 어떤 운으로도 존재가 규정되거나(규정당하거나) 어떤 계급에 속하도록 하지 않는 것. 존재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이 존재들이 차별•혐오를 겪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 또, 운 좋게 가지고 태어난 것들로 권력을 누리며 부정한 방법으로 남보다 좋은 기회를 얻고 권력을 대물림하는 것에 문제제기하는 것.

운은 랜덤인데 차별은 랜덤하지 않다. 차별은 랜덤하게 태어난 이들을 항목별로 묶어 도매급으로 제도권과 공동체 밖으로 넘겨버린다. “난민 못 받아준다”, “장애인은 입사 안 된다”, “여기 재개발할 거니까 나가고 돈 없는 건 니 사정이다”, “먼 미래에 회사가 부도날 예정이기 때문에 넌 오늘 퇴사다”, “동성 결혼은 안 된다”, “여성은 뽑아봤자 결혼하면 육아휴직하니까 안 뽑는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군 입대, 여대 입학 안 된다”.

자신을 ‘운 나쁘게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으로만 인식하는 이들에게 궁금한 게 있다. 당신은 어떤 걸 타고 태어났는지. 또 어떤 걸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 당신이 노동자인지, 장애인인지, 난민인지, 노숙자인지, 전세금 못 올려줘서 쫓겨나게 생겼는지, 부당해고 당한 적이 있는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통행에 지장이 없는지, 모부가 물려준 재산이 있는지, 명문대를 나왔는지, 서울에 사는지.

인간은 이렇게나 복잡한 존재다. 누구도 자신을 한 가지로만 설명할 수 없다. 태어난 이후, 누구나 자동적으로 여러 계급들의 외피를 두르게 된다. 너무 단단한 사회의 여러 차별적 구조들이 한 인간을 상위 계급에 두거나 하위 계급에 둔다는 뜻이다. 태어난 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렇듯 계급은 여러 개라 인간 하나가 다양한 권력을 누리고 다양한 차별을 겪는다. 이걸 이해한다면 여성으로 태어나 겪은 차별이 여성의 삶 전체를 억압하듯, 원하는 성별과 타고난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겪은 차별이 트랜스젠더의 삶 전체를 억압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한 가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여성’ 한 가지로만 이야기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건 ‘이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겪는 차별’이어야 한다. 그런데 터프는 ‘타고 태어난 우리의 한 가지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약자를 밟고 폭력을 행사한다. 대체 무엇을 수호하기 위한 걸까. 여성으로 태어나기 위한 ‘운’을 지키고자 하는 걸까. 근데 그거 지켜지나. 운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차별은 현실이다. 숙대 법대 입학 예정이었던 A씨와 변희수 하사가 겪었듯이.

2020년 2월에 발견하고 보관해뒀던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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