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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취하는 메추라기2024.08.16


썰은 아니고 10년쯤 전에 적어본
여름 맞이 괴담 입니다.
도시괴담 느낌을 주려고 노력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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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심야 버스 안은 조용했다. 버스 앞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은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어지럽게 흘러간다. 이따금 크게 출렁거리는 버스의 진동에 따라 어깨에 기대어 있는 A의 머리가 흔들렸다.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램프의 불빛에 깜빡이며 드러나는 그의 눈 및은 무겁게 그늘져 있었다.



그녀는 문득 처음 A를 본 날을 떠올랐다.




그 모임에 나간 것은 완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평소 그녀는 인터넷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 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온라인상의 인연이란 어딘지 일종의 역할극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페 [나 혼자 산다]에 가입한 것은 순전히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살림 노하우와 아기자기 하고 예쁜 인테리어, 일인 식당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왔던 그녀에게 취업과 동시에 결정된 자취 생활은 설레였지만, 동시에 조금 두렵기도 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요리는 손에 꼽을 정도고, 청소도 빨래도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터라, 생활력 역시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들게 구한 수도권의 직장을 고작 자취 문제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과연, [나 혼자 산다]에 가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열평 남짓한 좁은 공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꾸민 다양한 사진과 글들은 그녀에게 첫 자취 생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줬다. 그들 처럼 이 작은 방을 어떻게 나만의 색깔로 물들일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자취 생활에 대한 걱정은 멀리 잊혀진 뒤였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홀로 서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못할리 없어! 하는 오기도 조금이나마 생겼다.



성공적으로 이사를 마무리 지은 뒤, 그녀는 그 뿌듯한 마음에 카페에 인증샷을 올리고 싶어졌다. 반응은 생각 밖에 뜨거웠다. 제법 많은 축하 덧글들이 달려졌고, 그 중에 그녀의 원룸 꾸미기에 대해 상담해 줬던 사람들 역시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순식간이었다.




쿠마곰 2015.10.10. 20:42 – 소라님 상경 기념으로 번개 한번 치는게 어때요? 뿌잉뿌잉




반응은 폭발 적이었다. 쿠마곰의 덧글이 달리자 마자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 미스티 퍼플의 덧글이 이어졌고, 곧 이어 만만한 신촌이 어떠냐 하는 샤인의 덧글이 실시간으로 달렸다. 그 밑으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뜨거운안냥의 덧글이었다.




뜨거운안냥 2015.10.10. 20:48 – 자자, 여러분 김칫국 너무 마신다~ 이 번개는 소라님이 오시기로 해야 성립 되는거임! 그런 의미에서 오실거죠 소라님? (찡긋!)




선택지는 적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덧글이 그녀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싫지 만도 않았다. 자신의 서울 상경 축하라는 것을 빌미로 시간을 죽이려는 느낌도 적지 않아 있었지만, 서울에서 보내는 첫 날 밤을 홀로 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녀가 모임 장소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한 뒤였다.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어쩐지 낯간지러웠지만 유쾌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에 그녀는 겨우 빈자리에 앉았다.



“한잔 드릴까요?”



허물없이 물어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돌아봤다. 깔끔한 모히칸 투블럭의 남자였다. 그 손에는 얼음물이 가득 든 피처가 들어 있었다. 마침 목이 말랐던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는 자신을 [A]라고 소개했었다.



A와 그녀는 순식간에 가까워 졌다. 그는 정중하면서 유머가 가득했다. 그리고 조금 무심한 듯 건조한 그의 말씨는 어쩐지 그녀에게 매우 편하게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그녀는 A에게 푹 빠졌다.



그 뒤로 그녀는 [나 혼자 산다]의 모임에 곧잘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꼭 A를 만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A를 만나는 것은 그녀에게 퍽 즐거운 일이긴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마음이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친인척 하나 없는 서울 생활에 이 모임은 그녀에게 활력을 북돋아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모임은 늦은 시간 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1차로 저녁을 먹고, 2차로 이어진 노래방 모임에서, 전화를 받던 A가 갑자기 자리를 떴다. 한창 흥이 올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A의 거동이 이상하다 느낀 것은 오직 그녀 한명 뿐이었다. 그녀는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도 A가 돌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A는 가게 앞 데크에 앉아 있었다.



“A님, 무슨 일 있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핸드폰을 든 그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왜 그래요? 괜찮아요?”

“소라님.”



한참 뒤에야 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 이야기, 들어 줄 수 있어요?”

“뭔데요, 이야기 해봐요, A씨. 대체 무슨 일이예요? 얼굴이 창백해요.”

“좀 길어서.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그는 마른 침을 삼키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혹시 소라님은 그런 적 있으세요? 아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경험이요.

우리 집은 좀 이상한 집이었어요. 하지만 그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한참 뒤였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전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아버지도, 저에게 애정 표현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손찌검을 한다거나 체벌을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전 저희 부모님이 아주 상냥하다 생각했었어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쯤 이었을 거예요. 학교가 끝난 뒤, 저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죠. 왜 갔었는지는 잘 생각이 안나요.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용건이 있었던 것은 아닐 거예요. 그때 제가 깨닳은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거든요.

저는 친구가 부모님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요, 소라님. 이해하기 힘들거 예요. 친구가 부모님 방에 들어가는게 뭐 그리 놀랄 일이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날 이전까지 부모님의 방에는 단 한번도 들어가본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안을 본 적도 없었고요. 그래요. 저는 철이 들기 전부터 제 방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집 안에서 제가 갈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은 내 방과 거실과 부엌, 그리고 욕실이 다였어요. 부모님의 방은 결코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으로 남겨져 있었던거예요.

그날 저는 집에 가자마자 안방으로 갔어요. 무의식은 계속 그 문을 열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저는 문손잡이를 돌렸어요. 믿고 싶었거든요. 우리 집은 보통의 평범한 집이라고.

지금도 기억나요. 문은 아주 조용하고 매끄럽게 열렸어요. 제 방문은 조금 아귀가 맞지 않아 늘 삐걱 거렸거든요. 하지만 그 문은 아주 살짝 밀었을 뿐인데 아주 부드럽게 열렸죠.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어요. 책상과 퀸싸이즈 침대. 그리고 커다란 벽장. 조금 허탈했지만 안심한 마음으로 문을 닫으려는 순간, 벽장 안에서 철그렁 하는 소리가 났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했지만 저는 무시했죠. 왜냐하면, 우리집은 아주 보통의 집이었으니까요. 내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가서 벽장 안을 들여다봤어요.“



거기까지 이야기 하고 A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깍지낀 A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A를 와락 끓어 않았다. 그녀의 품안에서 그의 떨림이 점차 가라앉았다. 이윽고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안에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요, 아마 사람이었을 거예요. 처음엔, 괴물이라고 생각했지만요. 너무 앙상하게 말라 뼈에 가죽만 씌워둔거 같은 팔다리는 상처 투성이였죠. 게다가 머리는…. 길게 자라 피딱지가 엉겨붙어 있었어요. 너무 끔찍했어요.

무슨 정신으로 그 방을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린 뒤 보니 저는 제방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더라구요. 그 뒤로 저는 두 번 다시 부모님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떻게든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죠.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기숙제 학교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대에 들어가 버렸어요. 그리고 제대후,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았죠. 집에서도 절 찾지 않았고요. 그리고 전 계속 잊고 있었죠. 아니 잊으려고 노력 하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그는 핸드폰을 내려다 보았다.



“조금전 연락이 왔어요. 부고였죠. 부모님 두 분 다. 차 사고였다나 봐요. 마음 같아서는 그 집에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대로 평생 그 악몽에 사로잡혀 있고 싶지도 않고요. 어쩌면, 단지 그날의 일이 꿈에 불과할 수도 있잖아요? 그죠?”



A는 답을 바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어린 절박함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 말을 뱉은 것은 거의 자동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내가 같이 가줄게요.”


마침 A도 그녀도 지갑과 핸드폰만 챙긴 간소한 차림으로 모임에 나왔던 터라 다시 노래방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그의 고향집 위치를 물어 순식간에 차표를 예매하고 택시를 잡아 탄 뒤 바로 터미널로 향했다. 낮이 밝은 뒤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답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사실, 몇 잔인가 마신 맥주의 영향도 있었을 테지만.




시골의 터미널이 대부분 그렇듯, 터미널 앞은 작은 구멍가게 몇 개만 자리 잡고 있었고, 그나마도 문을 닫은 뒤였다.



“A님, 이제 어디로 가야해요?”

“이쪽으로….”



그녀가 묻자 A는 홀린 듯 걷기 시작했다. 무엇에 정신이 팔린 듯,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몇 분 걷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둘은 인가가 거의 보이지 않는 들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A가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을 뻗었다.



“저쪽이예요.”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언덕 모양의 산 밑에 자리 잡은 집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가로등 하나 없이 달빛에 의존하며 둘은 잡초가 무성한 길을 따라 걸었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집은 낡았지만 생각보다 말끔했다.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A는 문을 열고 안으로 한걸음 들어섰다.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서 실내가 잠시 밝아졌다.



그가 입을 열지 않아도 그녀는 어디가 안방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바로 그곳에 못 박힌 듯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관 등이 꺼지기 전에 벽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생각보다 평범한 거실을 지나 그녀는 안방 문을 열었다. 그의 설명 그대로 퀸싸이즈 침대와 몇몇 가구들이 늘어선 방 안쪽에 커다란 붙박이장이 보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눌러 봤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A를 돌아보았다. A는 말없이 그녀의 등 뒤에 얼어붙어 서서 방안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녀는 대신 핸드폰 조명을 밝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벽장문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문을 당겼다. 장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생각 보다 깊었다. 조금 더 안쪽에서 무엇인가가 반짝 하고 빛났다. 그녀는 장 안으로 들어가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별것 아닌 유리 조각이었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라고 생각 하는 순간,



[철컹]



묵직한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퍼졌다.



돌아선 그녀의 눈에 벽장 안쪽으로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던 강철 철창이 닫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철창에 커다란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A의 검은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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