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한테는 대체 어느 정도까지 내 기분을 드러내도 되고 안 되는지 잘 모르겠어.. 기분이 그날의 행동이 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많이 하는데 가끔 너무 힘들고 기분 울적해지는 날이면 그냥 아무 말 없이 같이 걷기만 하고 싶고 억지 텐션 만들어내고 싶지 않단 말야.

차라리 기분이 좋지 않은 데에 특정한 계기나 사건이라도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왜 속상했는지 공유라도 할텐데, 가끔 우울증이 올라와서 별의별 생각 다 들고 별거 아닌 일에 죽고 싶거나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런 생각을 일일이 남에게 털어놓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 한번은 너무 지쳐서 비슷한 말 (내일이 돼도 당장 변하는게 없을거 같다) 한 번 꺼냈다가 애인 표정이 바로 굳으면서 그런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은 자기가 제일 경계하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어. 그 뒤로는 최대한 밝고 긍정적인 모습 보여주고 나도 그런 모드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어.

근데 좀 지쳐. 남친 만난지는 이제 막 백일 되어가는데 내가 우울증하고 친구 먹은지는 훨씬 오래됐고, 남친은 내가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고쳤으면 하는 점들을 지금까지 서너번 정도 얘기했는데 과연 내가 이 사람이 원하는 것만큼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지적을 당하게 될 지도 괜히 착잡해서 이 관계의 끝을 한번씩 그려보게 돼..

엇그저께 내 컨디션이 안 좋아서 저텐션으로 헤어지고, 오늘은 남친 만나서 최대한 텐션 끌어올려서 기분 좋게 같이 밥도 먹고 춤도 추고 산책도 하고 다 하고 있었는데 또 남친이 이러이러한 점은 고쳐줬음 좋겠다고 각잡고 말해서 이야기 나누고 수긍하다 결국 기분 다운 되고 또 저텐션으로 헤어지고 집에 왔네. 표는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남친도 내가 저텐인거 느꼈을거고.. 매번 부정적이고 기분파에 남 기분 존중 못하는 사람처럼 보여질까봐 겁이 나. 아니면 그냥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걸까? 애인 사이어도, 이런 대화가 오갔더라도, 내 텐션 처음 그대로 유지하고 최대한 기분 괜찮아보이는 상태로 집에 왔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