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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자기2024.07.17

손절 당한 사람의 주절거림이야. 엄청 길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가 있었어. 다정하고, 따뜻한, 정말 닮고 싶은 사람이었어. 두 학번 터울의 선후배 관계였는데도 언니가 졸업하기 전까지 2년이란 시간동안 같이 기숙사도 쓰고, 짧게나마 자취도 할만큼 정말 많이 친해졌어. "내가 이만큼까지 언니랑 가까워도 되나?" 처음으로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만큼 내게 가장 귀하고, 반짝이는 소중한 사람이었어.

작년 2월, 내 졸업식이 있었고, 우리 아빠는 암 진단을 받았어. 아빠와 나는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가족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1년간 아빠 간병을 도맡아 했어.

안힘들었다면 거짓말이야. 정말 힘들었어.

그래도 1년 동안 언니가 많은 힘이 되줘서 버틸 수 있었어.

본가가 시골이라 아빠 항암 스케줄에 맞춰 광역시 대학병원에 다녔는데, 주말이나 시간 날 때면 언니가 병원에 찾아와서 같이 밥도 먹어주고, 평소 메신저 자주 보는 사람도 아닌데 1년동안 내 시시콜콜한 연락에도 매번 답장해주고, 한 번씩 내가 너무 힘들 때면 내 감정을 받아주고 함께 슬퍼해줬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

그리고 올해 2월, 아빠가 돌아가셨어. 새벽에 병원에서 돌아가셔서 바로 친척들한테 연락 돌리고, 장례식장 구하고,,, 아빠 모시고 본가로 내려오고 나서 아침에야 부고문자를 돌렸어.

문자 보자마자 언니가 전화왔고, 1시가 넘어서쯤 언니가 나랑 친한 동기 2명이랑 친한 선배오빠까지 자기 차에 태워서 내려왔어.

언니 보면 무작정 울 줄 알았어. 그런데 아침에 너무 구슬프게 울던 큰고모를 달래느라 그랬는지, 6살 조카랑 놀아주다 힘이 빠져 그랬는지 눈물은 안나오더라.

막상 자리 안내하고는 언니랑 많이 대화를 못나눴어. 언니랑 하고 싶은 대화가 많았는데 같이 앉아있는 동기와 선배오빠 앞에선 차마 입이 안열리더라고. 그렇게 다른 테이블 오가다가 언니가 바쁜 일이 있어 간다길래, 그제야 따로 앉아 잠깐 대화 나누고 언니는 먼저 올라갔어.

그렇게 3일이 후딱 지나갔고, 집에 돌아와서는 대청소를 시작했어. 우리 집은 낡은 주택이었는데 겨울에 아빠가 계속 병원에 입원해있어서 집이 방치되어 있었거든. 호기롭게 한 번 해보자 하고 대청소 시작했는데.. 사람 부를 걸 후회했어..

그 와중 언니가 23일에 와서 하루 자고 가겠다고 해서 "이 누추한 집을 언니에게 보일 수 없지!!" 하며 정말 열심히 청소하고 또 후회했어... 사람 부를 걸..

그리고 언니 오기 하루 전날, 언니 오면 뭘 먹고 뭘 해야하지 생각하다가 언니가 생전에 아빠 한 번 뵙고 싶댔는데 결국 못뵀었거든. 아빠 모신 추모공원이라도 같이 가면 좋겠다 싶어서 언니한테 이야기했어. 그런데 언니 반응이 좀 껄끄러워 보였어. 나중에 친척들이랑 가는 게 좋을 거 같다더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라 좀 당황스러웠어. 이때부터 나 혼자 삐그덕거렸던 거 같아.

그리고 저녁에 다시 연락이 왔어. 너무 바빠서 내일 일찍 내려가 점심이랑 저녁 먹고 바로 올라가겠다는 연락이었어. 그럴 일이 아닌데 그 때 나는 그게 너무 서운했어.

변명이라면, 예민했던 상태였어. 친척들, 친구들 모두 날 걱정해줬는데, 나는 나를 향한 걱정같은 감정들을 잘 못 수용하는 사람이라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버거웠어. 그리고 그동안 참아왔던 숱한 감정들도 모든 게 마무리된 시점에는 오히려 날카롭게 변해있었어.

그래서 언니한테 서운한 감정들을 토로해버렸어.

"언니 바쁘시면 안오셔도 괜찮아요. 괜히 언니 바쁜 거 아는데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시면 저도 불편할 거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좀 많이 서운해요. 아마 제가 언니한테 많이 의지해서 그런 거 같아요. 죄송해요."

언니는 미안하다고 답장을 했고, 새벽에 장문으로 카톡이 왔어.

근데 그 때의 나는 언니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일주일 동안 답장을 안했어. 마음이 다 정리되고 나서야 3월이 되기 전에 장문으로 답장을 했어.

언니는 카톡을 읽었고, 답장이 없었어. 바빠서 그러겠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어. 그 후로 계속 연락했지만 카톡은 읽고 답이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어.

그제야 알았어. 뭔가 잘못됐구나. 나 지금 제일 고마워해야 할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보다 서운하다는 말을 먼저하고, 언니 사정 무시한 채 내가 하고싶은대로만 행동했구나.

그제야 내가 언니한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장문의 카톡을 써서 보냈어. 언니는 읽었고, 연락이 없었어.

그 때부터 너무 괴로웠어. 바빠서 그럴거야, 곧 연락이 올 거야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설마 하는 불안감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했어. 주말만 되면 연락을 기다렸고 월요일 넘어가는 새벽이 되면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정말 죽고 싶을만큼 괴로웠어. 진짜 애인이랑 헤어져도 이 정도는 아니겠는데 싶을만큼 죽겠더라구.

그런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아. 여전히 매일 언니 생각이 났지만, 일상은 서서히 회복이 되더라. 저녁만 되면 언니한테 연락하고 싶었고 못참고 연락하기도 했지만 연락주기도 일 주, 이 주, 한 달,, 점차 길어졌어.

그렇게 5월이 됐고, 스승의 날에 은사님을 뵈러 갔어. 은사님도 내 사정을 다 알고 계신 분이야. 대학 졸업식도 와주시고, 장례식장도 와주셨어. 은사님께 언니 이야기를 했어. 선생님한테 털어놓고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고 싶었던 거 같아. 내 이야기를 듣곤 은사님이 그러시더라.

가장 친하고, 소중한 관계여도 어느 순간에 허무하게 끊어지기도 한다고.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런 시절인연이 인생에 꼭 존재한다고. 당황스럽고 괴롭겠지만 놓아주어야 한다고. 그러면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다고.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나와 끊어지지 않을 사람이라면 늦게라도 다시 연결될 거라고.

그리고,

"그 때 언니에겐 00이가 이 만큼의 비중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언니가 바쁘게 직장생활하고 언니의 일상을 보내면서 00이의 비중이 전보다 작아져 있을거야."

선생님의 말을 듣고나서야 당시에 제대로 마음정리를 했던 거 같아. 이후론 언니 생각이 나도 덜 괴로웠어.

선생님을 뵙고 며칠 지나 언니 생일이었어. 언니는 3월 말부터 내 카톡을 안 읽고있는 상황이었어. 생일에 언니에게 짧게 축하한다는 카톡을 보내고 톡방을 나갔어. 5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해준 너무나 예쁘고 다정한 말들이 많은 톡방이었는데..ㅎ

그렇게 벌써 7월이야.

7월 들어서 언니 생각이 갑자기 나더라. 그래서 오랜만에 언니에게 연락을 보내보려고. 여전히 많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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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기까지 읽어준 사람이 있다면,
시시콜콜 사람 사는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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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1

    아버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겠다.. 자기 고생 많았어.. 근데 정말 좋은 언니분이신게.. 사실 힘든 사람 이야기 들어주는 것도 대단한건게 슬픔은 전염되잖아 그럼에도 너가 너무 소중하니까 1년 동안 이야기도 들어주고 많이 힘이되준게 아닐까 싶어.. 아쉽게도 지금은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그거대로 받아들여보자! 사람일은 모르니까 다시 돌아올 사람은 돌아올거야 자기랑 언니 둘다 고생 많았고 아버님도 자기가 많이 기특할거야

    2024.07.17좋아요2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2

    자기 은사님 말이 나에게도 조금 위로가 되네 인간관계는 언제나 어려운거 같어ㅠ

    2024.07.17좋아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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