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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자기2024.08.17

내가 혼자 있을때 남을 돕지않게 된 이유

고등학교 1학년 초였을거야
이제 완전히 새로운 학교에 가서 완전히 새 친구들을 만나야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중학생 때부터 좋게 말하면 범생이 너드였고 나쁘게 말하면 찐따였어
나쁜 애는 아닌거 같은데 같이 놀기엔 코드가 안맞는 타입인 애들이 보통 반마다 한둘씩은 있잖아?
그게 나였지
나는 거의 모든 애들이랑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 초기 무리를 못 만들었고, 그대로 혼밥 확정인 상태였어
이제와서야 혼밥 나이스지만 그땐 혼자 밥먹는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던지
중학교에서 같이 다니던 친구들한테 손절 당한 뒤로 학교 혼밥이 좀 더 무서워졌던 것 같아
부모님한테 친구가 없다고 상담해봐도 친구가 뭐가 중요하냐는 대답만 돌아오고...
그래서 당시엔 내가 하교 후에 마음을 둘 곳이 교회 밖에 없었어
도저히 누구한테도 공감을 못 받을 것 같은 내 괴로움을, 기도라는 이름으로 털어놓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거든
기도를 마치고 나오면서 하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가치관이었고, 교회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되는 집까지 운동삼아 걸어가면서 공상을 하는게 일상의 루틴이 됐어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어디엔 어떤 가게가 있고 어디엔 내가 모르던 공원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그때의 나에겐 정말 재밌는 일이었어
그 날도 처음 가보는 골목길로 집에 가고 있었는데 정말 평범했어
오래된 주택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골목 입구에 가까운 집이 리모델링을 하고 있더라고
작업하시다가 잠깐 쉬러 나온 인부 분들이랑 주변 평상에 모여계시던 어머님들이 수다를 떨고 계신, 그런 엄청 평범한 골목이었어
기도를 마치고 온 나는 인류애로 가득 차서, 그런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오르막이었던 그 골목을 지나고 있었는데
골목 중간에 왠 할아버지가 오도카니 쪼그려앉아 계시더라
할아버지가 골목을 올라오던 나랑 눈이 마주치시니까 힘없이 내 쪽으로 손을 까닥거리시는거야
그래서 할아버지 근처로 가니까 할아버지가 정말 미안한 말투로 부탁하시더라
내가 술을 좀 마셔서 그런지 몸에 힘이 없어요, 저기 위가 우리 집인데 저기까지만 좀 잡아줄 수 있을까?
그리고 연신 미안해하시더라고
아까도 말했듯이 기도를 마친 나는 인류애로 충만한 상태였고 이게 기독교 최대 교리중 하나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를 실천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기꺼이 승낙했지
그래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일으켜 드리는데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
분명 힘이 없으시다고 했는데 손아귀 힘이 말도안되게 좋으신거야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그래도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신 곳 까지 갔지
다 왔어요~ 하고 손을 놓으려고 하는데 손을 안 놔주시더라고
저기 옆에 골목에 우리집이 있으니까 저기까지만 데려다주세요
날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건 부탁이 아니었어
할아버지 손이 내 손을 너무 꽉 붙들고 있어서 내가 놓을수가 없었거든
내가 원래부터 힘이 없고 빌빌거리는 사람이었다면 거기서 그렇게 당황하진 않았을 것 같아
나 여중 다니면서 체육대회마다 힘쓰는 종목 선수로 나가고 무거운 짐 나르는 머슴타입이었단 말이야
근데도 할아버지 손을 뿌리칠 수가 없겠다 싶은거야
혹시나 싶어서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골목길을 한번 쓱 봤는데 골목이 휘어있어서 골목 끝이 안보이고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더라고
그래서 죄송해요 제가 이젠 가봐야해요... 하고 최대한 예의 차려서 대답했는데도 할아버진 그때부터 대답도 없어
그냥 내 손을 꽉 붙잡고 날 보고만 있어
그때부터 그냥 약간 패닉상태였던 것 같아
죄송해요 저 이제 정말 가야해요 이 말만 계속 하면서 할아버지 시선을 피하고 있었어
안 놔주시니까 어떡하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졌는데
할아버지가 흘끗 골목 아래쪽을 쳐다보시길래 나도 그쪽을 한번 봤더니
그 아래 평상에서 수다떠시던 아주머니들이 다 우리쪽을 쳐다보고 계시더라고
그리고 인부 아저씨 한분이 집에서 나오시더니 우리쪽으로 좀 올라오시는거야
그걸 보시더니 할아버지가 내 손을 놔주시고 나를 계속 쳐다보시더라
나는 그냥 고개 푹 수그리고 죄송하다고 하고 도망치듯이 오르막길을 후다닥 올라갔어
올라가면서 진짜 많은 생각을 했거든 그냥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이신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한게 아닐까, 내가 잘못한게 아닐까
너무 신경이 쓰여서 오르막길 다 올라간 후에 뒤를 슬쩍 봤거든
할아버지는 내가 오르막길을 다 올라갈때까지 나를 쳐다보고 계시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다시 몸을 돌리고
나랑 같이 올라왔던 오르막을 그대로 다시 내려갔어
그리고 내가 처음 손 잡아드렸던 그 자리에 다시 쪼그려앉아서
자기한테 말 거는 인부 아저씨한테는 손사래를 치더라
그렇게 인부 아저씨가 다시 일하러 돌아갈때까지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계시는걸 보고 정말 도망치듯이 큰 길로 빠져나왔어
난 이 일 이후로 혼자 있을때 도와달라는 사람 있어도 도움을 못 주겠더라
그 꽉 붙잡혔던 손의 감각이랑 그 시선이 아직도 안 잊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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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무서워... 진짜 그래야겠다

    2024.08.17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글쓴이

      응응... 자기도 혼자있을땐 꼭 조심해...ㅠㅠ

      2024.08.17좋아요0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2

    미친 할배.. 자기 무서웠겠다 ㅠㅠ

    2024.08.17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글쓴이

      대체 뭘 위해서 그러고 있던건지 아직도 무섭고 궁금해...

      2024.08.17좋아요0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2

      ㅠ 알수 없지 … 근데 어디선가 본말인데 “진짜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 70대 할아버지가 웬만한 20대여자보다 힘세다는것도 맞고 ㅠ 그때 다른 사람들이 주변에있어서 다행이야

      2024.08.17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글쓴이

      진짜로 주변에 아무도 안 계셨으면 그 힘으로 끌려갔을수도 있을것 같아...ㅠㅠ 어른은 아이한테 도움을 안청한다는 것도 너무 맞는 말이고... 나도 나이 좀 들고 보니까 그런 학생들한테 술 마시고 도움 청하는게 정말 일반적인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구나 하고 느껴...

      2024.08.17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3

    아니..미친거아냐..? 너무 무서운데 지금 진짜 닭살 돋음..

    2024.08.17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글쓴이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피가 싹 식는 기분이야...

      2024.08.17좋아요0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4

    헐 미친 너무 무서워 나도 어렸을때 길을 가고있을 때 중년 아저씨가 내 앞을 가로 막았어 그리고 자기 술취했다고 혼자서 못가겠다면서 저쪽에 있는 자기 집에 좀 데려다 달라고 하셨어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좀 인적 드문 빌라촌이었어) 너무 쎄한거야 혼자서 못가겠다고 하시기엔 내 앞에 떡하니 서계샸거든. 정신도 멀쩡해보였고 술냄새도 안났어 무서워서 전 모르겠어요 어른한테 도움요청하세요라고 말하구 바로 옆에 있는 떡볶이 집으로 도망갔어ㅠ 다행히 따라 들어오진 않았는데 창문으로 지켜보니까 멀쩡하게 집쪽으로 걸어가시더라 수법인가봐..ㅠ 잘 빠져나와서 너무 다행이야

    2024.08.18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글쓴이

      짘짜 세상에 이런 똘갱이들이 왤케 많은거야...ㅠㅠㅠㅠ 자기도 진짜 무서웠겠다....

      2024.08.18좋아요0
  • user thumbnale
    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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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5좋아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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