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까지 읽어주라
금요일 밤에 남자친구를 만났고, 사소한 일로 크게 싸웠거든. 어찌저찌 화해?한것같지않게 하고
토요일까지 같이 있기로 해서 남자친구 집에서 잤어.
토요일에 남자친구가 오전 9시에 예약된 안과에 갔다가 치과에도 들렀다 왔어. 원래 도수치료까지 받고 온다고 했는데, 치료는 받지 않고 생각보다 일찍 집에 왔더라고.
나는 그전에 이미 나갈 준비를 다 끝내고 겉옷까지 입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일어나 보라고 하더니 입고 있던 겉옷을 벗기더라. 그러고는 나를 끌어안고 목에 키스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키스하는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더니 나를 침대로 데려가 눕히고는 자기 혼자 스킨십을 이어갔어.
나는 계속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거든. 이미 준비도 다 끝낸 상태였고, 애초에 그런 분위기를 잡고 스킨십을 시작할 생각도 없었어.
사실 금요일에 크게 싸웠지만 제대로 화해한 것도 아니었잖아.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킨십부터 하려는 게 나는 싫었어.
남자친구는 혼자 분위기를 잡고 내 몸을 만지고 애무했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어. 좋은 기분이 들지도 않았고, 내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받아주기는 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결국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고, 끝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그 순간에는 문득 '내가 얘한테 이런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안과도 가고 치과도 들르고, 도수치료까지 받고 온다던 사람이 치료도 받지 않고 일찍 돌아온 게 혹시 나랑 관계를 하고 싶어서였나 싶었어. 집에 내가 있으니까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온 건가 싶기도 했고.
물론 남자친구가 평소에 나한테 잘해주고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는 건 알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런데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금요일에 싸운 건 제대로 풀지도 않은 채 본인이 하고 싶다는 이유로 갑자기 스킨십부터 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저 본인이 원할 때 언제든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인가 싶었어.
내가 어떤 기분인지, 지금 그런 스킨십을 원하는지,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거든.
그래서 더 서운했고, 기분도 좋지 않았어.
그냥 문득 내가 남자친구한테 사랑받는 연인이라기보다, 본인이 원할 때 성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어.
평소에 잘해주는 것과 별개로, 그 순간만큼은 나를 너무 쉽게 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상했어.